날것(3)

사랑을 지우고 싶다.

  내 감정에서 사랑을 빼고 싶다. 나는 사소한 것조차, 찰나의 것조차 모조리 사랑해버리기 때문이다. 예를 들면 그래, 나는 봄날에 활짝 핀 벚꽃을 사랑했고 놀이공원에서 나누어주던 풍선을 사랑했으며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거리를 사랑했다. 벚꽃이 졌을 때, 풍선이 터졌을 때, 그 거리에 가로등이 들어섰을 때 다시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.
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.
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내년에 피는 벚꽃을 기다려야했고 새 풍선을 받아와야 했으며 새 거리를 찾아 나서야했다.
  그래, 난 지나간 모든 것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것들로 들어차게 했다. 우물이 마르면 새 우물을 찾아 나서듯, 볼펜을 다 쓰면 새 심으로 갈아 끼우듯. 옛 것을 새 것으로 바꿔치기 했다. 그래야만 내 구멍이 조금은 메워질테니까. 그래야만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.
  쉽게 사랑을 줘버리는 성격 탓에 내 외로움은 보다 값쌌다. 사랑에 대한 긴장감은 헐거워지고, 누구에게나 나누어주는 전단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. 전단지를 나누어줬을 때 받는 이가 거절한다면 그 거절로 쉽게 상처받는다면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? 누군가는 내가 나누어주는 전단지가 짐이 될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는가 하면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는데. 그런 이들에게마저도 나는 전단지를 줘야만 하는가.